과학은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해왔다. 나무를 가공해 종이를 만들었고, 석탄을 태워 얻어낸 에너지로 우리의 다리를 쓸모 없게 만들었다. 우리는 무너지지 않을 모래성을 쌓아왔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연을 이용하려는 것이 생태계를 파괴해왔다고 주장한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 매연으로 가득한 하늘. 나는 이 같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없애기 위해 어디서든 자랄 수 있는 식물의 배양 실험을 비밀리에 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과학은 또 한 단계 진보했다. 플라스틱 위에서 식물이 자랐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물과 빛, 그리고 흙이 있어야 식물이 자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는 모두 식물이 영양분을 빨아먹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나는 이를 깨닫고 그 수단만 조금 바꿔주는 실험을 했다. 식물의 분자수준에서 화학물질이 공존할 수 있도록 유전자 구조를 변형하는 것이다. 어제까지는 불가능했지만 오늘은 가능하다. 보라, 매끈한 보라색 플라스틱 위에 큰 뿌리를 내려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이 식물을!
“시내 곳곳에서 콘크리트 위로 자라는 식물이 발견됐습니다. 몇몇은 아파트 전체를 휘감고, 집안까지 들어왔을 정도로 빠르게 자라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앵커의 목소리에 놀랐다. 내용을 듣고는 더 놀랐다. 나는 이 실험에 관한 어떤 것도 외부에 알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저 뉴스 속의 식물들은 뭐지? 나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내 눈앞에 보인 것은 작은 알갱이들이 달린 커다란 잎사귀였다. 기분 탓일까? 그 잎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다. 줄기는 마치 심장의 펌프질처럼 무언가를 끊임없이 몸 전체로 흐르게 하고 있었고, 잎사귀는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움직이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한 순간 큰 잎이 나를 덮쳤다. 잎이 나를 감싸는 힘, 바라보는 시선, 생각에 잠긴 줄기… 이건 원시적인 수준의 구조체가 아니었다. 생김새는 다르지만 나와 같은 종족이었다. 그것도 완벽히 자연을 이용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진화한 형태의 인간이다.
나는 식물에 짓눌리고 있다. 처음에는 나를 단번에 죽이는 줄 알았지만, 내 몸 곳곳에 뿌리를 내려 천천히 나를 흡수한다는 것을 알았다. 눈을 돌려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걸어 다니며 나와 같은 ‘원시인간’들을 흡수하고 있었다. 실험은 애초에 틀렸었다. 우리처럼 그들도 진화하고 있던 것이다.
<신인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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